
한국 만화계의 스토리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글입니다.
...별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심심해서 썼어요.
저는 한국 만화계에서
스토리작가의 데뷔 과정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A. 만화가 지망생 -> 만화가 -> 스토리 작가 겸업 or 스토리작가로 전향
B. 만화가 지망생 -> (그림 좌절) -> 스토리 작가
C. 스토리 작가 지망생 -> 스토리 작가
A 케이스는
그다지 흔치 않은 경우로 봅니다만, 손희준 작가님이 유명하겠네요.
인기 만화가가 스토리 작가를 해준다면 대부분의 출판사가 반색을 할 일이겠죠?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해서 생략하구요.
B 케이스는,
가장 흔한 경우입니다.
그림에 재능이 없어 보이는 어시스트한테
만화가가 “넌 그림 못 그리니까 스토리나 써라.”
라고 권하는 전개가 가장 일반적이었어요.
만약 그 만화가가 꼰대라면
스토리 쓰라는 말 뒤에 “내 고스트로♡” 라는 말도 덧붙였을 겁니다만
호랑이 담배 피우던 무식한 시절 이야기겠죠.
이제는 그런 분들 안 계실 겁니다. 아마도… maybe.
수로 따지면 B케이스가 압도적으로 많았을 겁니다. 통계 내본 적은 없지만…
(그냥 경험상 하는 소리;;; 미안해요. 딱히 통계도 없으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
구조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스토리작가 한다고 도전하는 것보다 데뷔하기도 쉽거든요.
-만화가가 자기 어시를 스토리작가로 쓰는 경우 (옛날에는 고스트일 경우도...)
-만화가가 자기 어시를 스토리작가로 편집부에 소개하는 경우
(본인 실력이 엉망인데 스승인 만화가의 섭외력이 너무 좋으면 나중에 신인킬러로 불리는 경우도...)
-같은 화실의 다른 만화가지망생이랑 팀을 이루는 경우
등의 방법으로 좀 더 원활하게 데뷔를 하게 되거든요.
설령 그런 게 없다고 해도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 열심히 그린 콘티는 만화 원고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만화잡지사 기자들도 해독할 수 있게 됩니다. 훨씬 반가울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이게 비극의 시작이었어요.-_-;;;
수많은 이가
단지 그림을 못 그린다는 재능(?) 덕분에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는 게
한국 만화계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였어요.
안타깝게도 스토리를 쓰는 걸 좋아거나, 잘 해서 한 게 아니었다는 거죠...
여기서 오해하시면 곤란한 것이, 지금 그림 못 그린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구요;;;
뭐, 스토리 작가가 그림 좀 못 그리면 어때요. 잘 그렸으면 만화가 했지!
게다가 제가 감히 그런 말을 꺼낼 수도 없는 것이...
정식으로 그림을 안 그려본 저 같은 사람보다 그림을 1000배는 잘 그리십니다.
게다가 콘티가 원고 뎃생 같아서 얼마나 보기 편한데요. 기자들도 좋아해요.
문제는 본인이 스토리 작가를 하기 싫어한다는 것.
스토리를 잘 써서 된 것이 아니라 그림을 못 그려서 된 것이니
체질에 안 맞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겠죠?
본인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억지로 스토리만 쓰려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도 잘 하기 힘든 법이거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데 스토리의 수준은 알 만하죠.
물론 그 중에는 해보니까 만화가보다 이쪽이 성미에 맞아서
즐겁고 행복하게 활동하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건 매우 바람직한 일이죠.
(그러니 이런 경위로 데뷔한 작가님들을 비난하는 거라고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
C 케이스의 스토리작가는 좀 드물어요.
다른 과정 없이 스토리 작가가 되기 힘든 이유가 있거든요.
첫째, 스토리작가로 실력을 키우기가 쉽지 않아요.
만화를 안 그려봤으면서도 원고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합니다.
애초에 그림을 전혀 안 그리던 사람이 갑자기 콘티를 짜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구요.
프로로 데뷔할 만큼 공부를 하는 방법을 찾는 게 처음에는 좀 힘듭니다.
그래서 스토리작가들은 충분한 수련 없이 데뷔작을 연재해서
같이 일하는 만화가에게 굉장한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참 많았어요.
심지어 워낙 고생만 시키고 좌절을 듬뿍 선물하는 바람에
신인 만화가가 좌절해서 업계를 떠나게 만드는;;;;
''신인킬러' 스토리작가도 좀 있었어요. (보통 빽이 쩌는 분들이 많...)
그런데 여기서 더 안타까운 건
연재를 몇 번 하고 나서도 여전히 기본적인 수련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스토리작가들이
일부 있...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하죠. 엉터리로 하는 사람이 진짜진짜진짜 많아요.ㅠㅠ
뭐, 저도 한국에서 연재 할 때는 미칠듯이 허접했어요;;; 지금도 썩 잘 한다고는 못하지만...
둘째, 설령 실력을 키운 후라고 해도 데뷔가 힘들어요.
원고를 해줄 친구가 없다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화실 생활을 해서 친한 만화가가 있거나, 만화가 지망생을 만나서 같이 작품을 만드는 게
가능성이 높지요. (저도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운이 굉장히 좋았다고 할 수 있죠.)
왜 그냥 스토리로 승부 못하냐구요?
한국 만화 잡지 기자들은 콘티를 봐도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분명히 유능한 분들도 많이 계실 겁니다만... 제가 만나보질 못해서 그냥 경험했던 것만 편견으로 적습니다.)
그래서 B케이스의 스토리 작가가 데뷔에 더 유리합니다.
콘티가 아니라 뎃생을 떠버리면 만화 원고에 가까워지니까 출판사 기자도 이해할 수 있구요.
혹시라도 '만화 편집을 한다면서 콘티도 이해할 줄 모르는 건 너무 무능하지 않나?' 라고
한탄하시는 분이 있을까 해서 부연합니다만, 그게 그렇게까지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구나 한국 만화계 현실을 생각하면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거랍니다.
그림도 못 그리는 사람이 깨작깨작 뼈다귀 인간을 그려놓은 콘티를,
연출 의도를 파악하고 만화 원고로 상상하는 게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거든요.
국내 프로 작가들도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분들이나 가능한 고급 기술이죠.
아마 일본 편집자 중에서도 콘티 못 읽는 사람이 있을 거에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그런데, 이렇게 스토리 작가가 되기 힘든...
혹은 억지로 하게된 사람들이 많은;;;; 한국 만화계에는
이상하게도 일본에 비해 스토리 작가가 더 많아요. (물론, 절대 숫자가 아니라 비율)
오리지널 만화 작품 기준으로 생각하면
국내 만화의 스토리 작가 비율은 일본에 비해 굉장히 높습니다.
예를 들어 월간 [찬스]의 경우
2012년 봄 현재, 한국작품 연재작 8작품 전부가 스토리 작가가 있는 만화군요.
100%라니!!! (솔직히 그 정도로 높을 줄은 몰랐음)
일본의 어떤 만화 잡지를 봐도 이렇게 높은 경우는 없어요.
물론 라이트노블 원작물이 많은 잡지라면 작화/스토리 분리된 작품이 제법 많겠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서 스토리작가가 아니라서 제외합니다.
어째서 한국 만화계에서는 일본보다 스토리 작가 비율이 높을까요?
그 해답은 다음 포스팅에 써볼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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